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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편지 한낮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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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7-03 10:49
정충영 교수의 <빌립보서 제3장 ~ 제4장>
 글쓴이 : 남산편…
조회 : 3,086  

제3장 하나님으로부터 난 의와 율법주의

 

1- 9 하나님으로부터 난 의(義)

10-16 부름의 상을 위하여

17-21 우리의 시민권

 

기뻐하라고 강조하며 율법주의를 경계하라고 주의한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이 자랑할 만한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난 의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우리의 낮은 몸을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하게 하시리라 믿고 그 소망가운데서 살아가게 하신다.

 

1-9 하나님으로부터 난 의(義)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안부를 드리고 그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에게 해야 할 일을 맡겼기 때문에 더 이상 빌립보교회에 관해 공식적으로 전할 말이 없었다. 그러므로 1절에서 '끝으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빌립보교인들을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끝으로'란 말을 하고도 그의 말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하는 말은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이다. 그들은 에바브로디도의 문제로 걱정하고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의 문제로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에게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말하고 있다. 빌립보서에는 '기쁨'이란 단어가 5차례(1:4, 1:25, 2:4, 2:29, 4:1), '기뻐하라'는 구절이 6차례(1:18, 2:17, 2:18, 3:1, 4:4, 4:10) 출현하고 있다. 특히 1:18, 2:17, 2:18, 4:4 등 4차례에 걸쳐 '기뻐하고 기뻐하라'라고 말하고 있다. 4장으로 된 짧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거듭 기쁨 혹은 기뻐하라고 언급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바울은 1절에서 이렇게 거듭 같은 말을 쓰는 것은 자신에게 수고로움이 없고 이 서신을 읽는 성도들에게는 안전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여기서 '안전하다'는 것은 헬라어로 '아습할레스'인데 '이것은 넘어지지 않게 한다, 확실하다, 안전하다'는 뜻이다. 환란변고가 많은 이 세상이지만 우리가 주를 의지하면 주께서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여 주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일찍이 바울은 전도여행 중에 빌립보에서 전도하다 잡혀 그의 발은 차꼬에 든든히 채워져 깊은 옥에 갇혔지만 바울과 실라는 한밤중에 기도하고 찬송을 부를 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지고 간수의 온 집안이 주 예수를 믿게 된 기적이 일어난 바 있다(행16:25-27). 기뻐하라고 할 때 바울은 그가 감옥에 갇혀서도 기뻐하며 찬송함으로써 기적이 일어났던 일을 회상하였을 것이다.

 

2절부터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들어온 이단들에 대해 주의할 것을 명령한다. '개들을 삼가라'는 것은 개들을 경계하라 혹은 주의하라는 뜻이다. 개들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사람에게 함부로 달려들어 짖고 무는 개들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개란 성도를 해롭게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행악자란 성도들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몸을 상해하는 일'이란 할례 받는 일을 가리킨다. 할례는 남자 성기의 표피를 잘라내는 의식으로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징으로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헌신하겠다는 표시이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상당수가 예수를 믿게 되었지만 그들은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주장하여 교회를 혼란스럽게 했다.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라는 것은 초대교회에서 일부 성도들은 할례 없이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들을 손할례당(損割禮黨: multilators of flesh)라 부른다. 손할례당이란 헬라어로 '카타토메'라 하는데 이것은 '절단자'라는 뜻으로 할례의 참 뜻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몸만 상하게 하는 사람으로서 거짓 할례자들이다.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3절에서 바울의 이들은 하나님이 구원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육체의 할례를 주장하는 것은 잘못 된 것이라 강조하고 참된 할례는 할례의식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성도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뜻이다.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려야한다(요 4:24).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받을 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의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며 온전하게 하신다.

 

이어서 바울이 자신의 예를 들어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다른 누구보다도 더 자랑할 만한 것이 더 많았다. 그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였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다.

 

할례는 8일 만에 받는 것이 정식이다(창 17:12).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제 때에 할례를 받지 못한 것이 일반적이었다. 예컨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온 후에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였다(수 5:3-6). 그러나 바울은 율법에 정한대로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할례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큰 사랑꺼리가 된다. 이스라엘 족속, 베냐민 지파,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란 혈통적으로 명문가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 당시 바리새파는 에세네파와 사두개파와 함께 이스라엘의 3대 분파에 속하였으며 바울 당시에는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분파였기 때문에 바리새인은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는데 바울이 이 지파에 속해 있었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였다'는 것은 다메색 도상의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그는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갖고 다메섹에 갈 정도로 율법에 열심이었다(행 9;1-3). 또 바울의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기 때문에(행 22:3) 율법의 의라는 측면에서 나무랄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모든 육체의 자랑꺼리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바울은 자기가 자랑할 만한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오히려 해로 여긴다고 말한다. 7절의 '내게 유익하던 것'은 앞에서 언급한 모든 자랑스러운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모든 자랑스러웠던 것들이 그리스도 앞에서는 유익이 되기보다는 해가 된다고 여긴다고 말한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주 되시는 그리스도의 아는 초월적인 위대함과 비교할 때 이 모든 것은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렸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해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한다. 8절의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모든 것을 초월할 만큼 위대한 것이란 뜻이다.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 믿게 되고 믿게 되면 구원을 얻기 때문이다. 9절에서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는 것보다 더 귀중한 것이 없음으로 모든 것을 버려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다는 의미이다. 9절에서 우리의 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고 말한다.

 

10-16 부름의 상을 위하여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의는 율법을 준행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밝히면서 10절에서 이제는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하고 부활에 이르려한다고 말한다. 바울이 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의 권능, 고난에 참여함, 죽은 자 가운에서 부활에 이름이다. 부활의 권능이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게 한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킨다. 우리도 그 능력을 힘입어 다시 살 것이기 때문이다.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이 우리가 당했어야 할 고난인 것을 기억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고난을 피하지 않음을 말한다. 고난 없이 영광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 바울은 죽어 부활에 이르기를 바라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늘에 속한 것이므로 인간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내용들을 더 알기 원하였다.

 

그러나 12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이러한 것을 다 알게 되었거나 벌서 온전하게 되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붙잡았던 그것을 잡으려고' 힘차게 달려간다고 말한다.

성도들은 영적으로는 이미 구원을 얻고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었으나 육적으로는 아직 불완전한 성화의 과정서 달음질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이란 성도들을 핍박한 바울을 복음 전하는 사도로 삼으시고 그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 주신 구원과 의롭다함을 주신 것을 가리킨다. 힘써 바울이 달려간 것처럼 모든 성도들은 부르심의 상을 위해 힘차게 달려가야 한다(빌 3: 14).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은 그가 사랑하는 빌립보교인들에게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가는 요령을 이야기하고 있다. 빌립보교인들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해 잘 달려갔고 또 잘 달려가고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바울은 앞을 향해 달려간다고 말하고 있다. 13절에서 '오직 한 일'이란 하나 뿐 인 푯대를 말하는 데 이것은 인생의 최종적인 목표이다. 그 푯대에 다다르기 위해서 달려가야 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듯 두 가지 푯대를 향해 달릴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려면 재물을 멀리 버려야 하듯 한 목표만을 향해 달려야 한다. 바울은 잘 달리는 요령을 설명하고 있다. 이미 잡은 줄로 여기지 않는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린다.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 달려간다. 부르심의 상을 푯대로 삼아 달려간다.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에서 앞에 있는 것이란 바로 푯대를 말한다. 바울은 이 푯대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이 푯대를 바울은 '부르심의 상'이라 불렀다. 그것은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받게 될 상이란 뜻이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설 때 온전한 구원 곧 영광스런 부활과 영생을 상으로 얻게 될 것이다.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달려가야 한다는 뜻이다. 어느 정도 잘 달렸다 싶으면 곧 나태해지기 싶다. 토끼와 거북의 경주에서 거북이처럼 끝까지 달려야한다. '뒤에 있는 것은'이란 과거의 자랑거리를 가리킨다. 뒤를 되돌아보며 앞으로 달리지 않으면 목표에 다다를 수 없다.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15절에서 '온전히 이룬 자들'이란 헬라어로 라는 원어 '텔레이오이'로서 이것은 '온전한 자들‘이라는 뜻으로 우리 성도들을 가리킨다. 육신적으로는 우리는 온전하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온전하여졌다. 히 10:14에는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하게 된 우리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신다고 말씀하셨고 고전 2:6에서도 '우리가 온전한 자들'이라 말씀하신다. '온전히 이룬 자'인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라는 것은 그러한 관점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즉,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점에서 바울의 의견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왜 바울의 관점이 그러해야 하는지를 그에게 분명히 밝혀주실 것이기 때문에 자신은 그 문제로 논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말한다.

 

16절에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란 말은 우리의 믿음이 사람마다 다 같지 않으나 자신의 믿음대로 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는다'(롬 14:2).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롬 14: 16). 지금 부족한 믿음이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온전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이다(롬 14: 23)

 

 

17-21 우리의 시민권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말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너희는 나의 모법을 따르라.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신앙의 모범으로 본받고 있듯이 빌립보교인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권하고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나를 본받아라' 할 만큼 모범적인가? 우리 중에 그렇게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 있는가? 반성할 일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발견한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믿으며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멀리 있는 사람뿐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사람 중에 본이 될 만한 사람을 찾아 그를 본받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17절에서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말씀을 따라 사는 성도들이 있는가를 살펴보라고 말한다. 멀리 있는 사람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18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조롱하고 멸시하며 성도들을 괴롭히는 사람들로서 그들은 교회에까지 들어와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들을 가리키는데 율법주의자가 문제의 대상이다.

 

19절에서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본을 따라 살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며 눈물로 간구하고 있다. 십자가의 원수들은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의 고난당함을 비웃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멸망하게 될 것이다. 19절에는 그들의 실상을 말하고 있다. 그들의 끝은 멸망이다. 그들은 자신의 배를 신(神)처럼 섬긴다. 그들의 영광으로 생각하던 것들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 그들은 땅의 일을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배를 부르게 하는 것을 하나님 섬기듯 중시했지만 그들이 영광으로 여겼던 모든 것들은 부끄러움이 될 것이다. 그들은 땅의 일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멸망으로 마치게 된다.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20절에서 바울은 믿음의 본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에 성도들에 대해 언급한다. 1)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2)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시는 구원자 그리스도를 기다린다. 3) 그가 우리의 몸이 영광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신다. 우리 성도들은 이중 국적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한국의 국적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갖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은 로마로 부터의 보호를 받고 로마인으로서의 권한을 누릴 수 있듯 성도들은 하늘나라의 시민인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보호와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우리는 머지않아 우리의 고향인 하늘나라로 가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거기로부터 오시는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21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능력으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신다고 알려준다. 우리를 변하게 하시는 그 능력은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복종하기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낮은 몸'이란 우리의 육체를 가리킨다. 이것은 흙으로 지어져 흙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진다(고후 4:16). 그러나 이 낮은 몸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의 형체로 바꾸어진다. '영광의 몸의 형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처럼 영광스러운 몸'을 가리킨다. 변화 산에서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셨던 것처럼(눅 9:29) 우리의 몸도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하게 될 것이다.

 

 

제4장 바울의 권면과 빌립보교인들의 선물

 

1-9 바울의 권면

10-20 빌립보교인들이 보낸 선물

21-23 끝 인사

 

바울은 자신의 동역자 개개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표한 후에 빌립보교회에 대해 감사를 전한다. 성도들은 일관되게 항상 기쁨과 감사와 간구의 삶을 살아가며 모든 일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귀감이 되어야 한다. 빌립보교회가 보낸 선물에 대한 감사와 영적인 의미를 설염하고 끝 인사로 편지를 끝낸다.

 

 

1-9 바울의 권면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이요, 사랑하는 이라고 부르며 그들에게 '주 안에서 서라'고 권한다. 빌립보교인들을 면류관이라 한 것은 그들 때문에 바울이 하나님의 면류관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그들은 바울 때문에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다. ‘이와 같이'라는 것은 우리의 낮은 몸이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한다는 것이다. '주 안에서 서라'라는 것은 주의 말씀을 지켜 흔들리지 않고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는 뜻이다. 영광의 몸을 입게 된다는 소망을 가진 사람마다 말씀에 굳게 서기 마련이다.

 

2절에서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 두 사람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하고 있다. 성경 다른 곳에서는 두 사람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빌립보에서 영향력 있는 제직으로서 서로 간에 의견 대립이 잦았던 보인다. 다툼은 자신의 주장이 다른 사람의 것보다 더 우수하다는 판단에서 생기기 쉽다. 교회에서의 일은 자기의 주장이 중요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판단하실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자기의 주장이 사심 없는가를 살펴야 하고 자신의 양보가 더 큰 화합을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되면 주저 없이 양보하는 것이 교회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된다. 교회에서 섬기는 사람들 간에 불화가 많은 것은 자신의 주장이 다른 이의 것 보다 낫다고 믿고 끝까지 관철하려고 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양보가 오히려 미덕이 된다는 점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도들은 다양한 이견들을 하나로 모우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3절에서 '멍에를 같이한 네게'라는 것은 바울과 멍에를 같이 한 너에게 라는 뜻이다. 멍에를 같이 한다는 것은 두 마리의 소가 한 멍에를 메고 있다는 말이다. 두 마리가 보조를 맞추어 일하듯 바울과 함께 마음을 같이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이 편지를 전달받은 빌립보교회의 담임교역자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멍에를 같이한 자'란 헬라어로 '쉬쥐고스'인데 이것이 사람의 이름이나 별명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복음을 위해 멍에를 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바울은 그에게 '쉬쥐고야! 너는'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쉬쥐고스'에게 바울이 권하는 말씀은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데 바울을 도왔던 이름 없는 여인들과 글레멘드와 그 외에 여러 바울의 동역자들을 도우라고 권면하고 있다. 생명책이란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으로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다.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다'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이란 뜻이다. 말없이 충성되게 교회를 섬기는 이들이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들의 수고와 노력을 알아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다.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을 향해 거듭 거듭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권고한다. 그러면서도 그것도 모자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한다. 왜 우리가 늘 기뻐해야 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답할 수 있지만 데살로니가전서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면서 우리가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고 알려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뻐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뻐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기뻐할만한 것으로 채원주실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하게 될 때 우리는 쉽게 남에게 관용을 보여줄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이 불만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남에게 관용을 보여주기 어렵다. 여기서 관용이란 헬라어로 '에피에이케스' 인데 이것은 '온유함, 친절함, 너그러움 등'의 뜻을 갖고 있다. 이어진 5절에서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란 주님께서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고 바로 옆에 계신다는 의미와 함께 주께서 오실 날이 멀리 않았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주께서는 다시 오셔서 모두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의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을 것이다(요 3:18).

 

우리는 수많은 염려 속에 둘러싸여 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마 6:25). 남이 모르는 걱정과 염려로 괴로워하며 밤을 지세우기도 하고 닥쳐올 여러 어려움이 내게 너무나 커 두려워한다. 그러나 6절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하신다.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는 공중의 새를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값 주고 사신 우리를 새보다 더 귀히 여기시기 때문이다(마 6: 26).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기만' 하면 우리의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얻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기도와 간구로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뢰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나님께는 쉽고 어려운 일이 따로 없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모두 이루신다. 기도(pray)는 주기도문처럼 예의를 갖추어 하나님께 비는 것이지만 간구(petition)란 간구하는 소원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구할 것이란(request) 당장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떠한 것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로 구하는 것을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주의할 점은 6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루어질 것을 확신할 때 그러한 감사가 동반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막 11;24).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7절에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모든 지각에 뛰어난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신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아무리 깊이 오랫동안 생각해도 미칠 수 없는 그러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평강으로 가득 찰 때 우리는 근심, 걱정, 두려움과 같은 것은 사라지고 평강을 누리게 된다.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바울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것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정결한 것, 사랑받을 만한 것, 칭찬받을 만한 것, 덕이 있는 것, 기림이 있는 것 등이라.

 

이 세상은 거짓 것으로 가득 차 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요 8: 44)이기 때문에 그들을 닮아서는 안 된다. 성도들은 무엇에든지 참된 것을 찾고 참된 것을 행해야 한다.

 

'무엇에든지 경건하며'에서 '경건한 것'이란 헬라어로 '셈노스'인데 이것은 '존경할 만하다, 품위 있다, 고상하다'는 뜻을 가진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신분을 갖고 있는 성도들은 세상 사람과는 달리 그 인격에서 고상함이나 품위를 지니고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재물이나 명예를 얻으려 품위를 잃어서는 안 된다.

 

'무엇에든지 옳으며'란 모든 일에서 의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의롭게 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돌아가셨다. 우리가 살게 될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로 로마서에 기록하고 있다(롬 14:7). 의가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는 세상과 비교하여 의로움이 확연하게 구분되지 못하다는데 있다. 불의하고 불법, 위법을 피하고 정정당당하게 살아가야 한다.

 

'무엇에든지 정결하다'는 것은 헬라어로 '하그노스'로서 이것은 '순결하다, 거룩하다’는 뜻이다. 성경에서는 순결하다는 뜻은 하나님만 섬긴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두 주인을 섬긴다면 순결할 수 없고 다른 신을 섬긴다면 정결할 수 없다. 하나님만 섬기며 그에게 순종하는 것이 참된 정결이다.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라는 것은 사랑할 만한 것이나 칭찬 받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대로 그것을 본받아야 한다.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라는 것은 우수한 것이나 기릴만한 것이 있다면 이라는 의미이다. 바울은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선한 것을 생각하고 익혀야 한다. 예컨대 이웃사랑도 우리가 생각하고 익히지 않으면 실행하기 어렵다. 8절에서 '이것들을 생각하라'는 말에서 '이것들'이란 바로 앞에서 언급한 여덟 가지 덕목을 가리킨다. 바울은 우리가 이러한 덕목을 항상 염두에 두고 생각하며 실행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하고 있다.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3년 가까운 세월동안 빌립보교인들을 직접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은 말로만 아니라 삶으로 가르쳤고 그로 인해 바울의 인격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당당하게 그들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물론 바울도 인간이었기 때문에 완전한 인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굳센 믿음과 성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은 누구보다 못지않았기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전 11:1)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말씀들을 들어 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지만 이를 실천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바울처럼 감히 '너희는 나를 본받아라'하지 못한다. 이것이 성도들의 약점이며 보완해야 할 문제점이다. 바울을 모범삼아 그를 본받는 것이다.

 

9절에서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는 바울을 본받아 바르게 살아간다면 우리의 마음에는 아무런 갈등도 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다. 평강은 히브리어로는 샬롬, 헬라어로는 에이레네 인데 이것은 평강, 평화,, 조화, 일치 들의 뜻을 갖고 있다. 평강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할 때에 얻어진다. 그러므로 악인들에게는 평안이 없으나(사 48:22).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평안이 넘친다. 우리의 갈등의 원인 중 하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따라 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바울이 말한 대로 살아간다면 이러한 갈등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약 2:17).

 

 

10-20 빌립보교인들이 보낸 선물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0절에서 바울은 다시 크게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빌립보교인들이 바울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속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이를 보여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의 전도 사역의 초기에 물질로 그를 후원했었지만 중단되었다가 이 편지를 쓰기 전에 다시 물질적인 도움을 보내온 것이다. 이것은 물질적인 도움이란 차원보다 빌립보교회가 바울의 복음 사역과 그 고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갖는다(빌 4:14).

 

11절에서 바울이 기뻐하는 이유는 궁핍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 있더라도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 여기서 자족하기를 배웠다는 것은 식사를 하지 않고도 배가 부르거나 옷일 입지 않고도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비결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환경이 어떠하든 불평 없이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인내력과 불평 없이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되었고 좋은 환경에서는 그것을 고마워하며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바울은 여유가 있을 때는 저축하고 절약하며 어려울 때를 대비하는 습관을 길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때를 따라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더라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어 안전하게 하실 것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터득한 것을 가리킨다.

 

 

실제 바울은 전도여행 중에 수많은 고난을 당하였고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겪었는데 이러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이다(행 11:23-3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면서 말씀하신 것 같이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해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하시면서 하나님의 일꾼은 당연히 먹을 것을 을 것 받는다고 말씀하셨는데(마 10:9-10) 바울은 이를 매번 경험하였을 것이다.

 

12절에서는 바울은 자신이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안다고 말하고 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린다는 말처럼 부하게 된 사람들은 어려운 시절을 잊어버린 채 낭비와 환락에 재물을 쓰고 가난하게 된 사람은 그들이 잘 살았을 때를 잊어버리고 현재의 신세를 한탄하며 불공정한 세상이라며 불평하기만 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비천에 처할 줄도, 풍부에 처할 줄을 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우리가 비천에 처하게 될 때 그것이 주는 교훈과 의미를 알고 풍부에 처하게 될 때 그것이 주는 교훈과 의미를 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배고픔과 배부름, 풍부와 궁핍에 처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말한다. 우리는 삶에서 비천해지거나 풍부해지거나 어떠한 상황을 만나더라도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으로 가능하다.

 

13절에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구절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영어 NIV가 본문에 더 잘 어울리게 번역되어 있다.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비록 나의 능력은 지극히 적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나는 어떠한 것이라도 할 수 있다. 할렐루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빌립보교인들의 도움을 크게 기뻐한 것은 그 선물이 바울의 선교와 고난에 참여한 것이기 때문에 바울 '잘하였다'고 칭찬하고 있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물질로 그를 도운 사실에 감사를 표시하며 복음의 시초를 회상하고 있다. 15절에서 '복음의 시초'란 빌립보교인들이 처음으로 복음을 알게 된 초기라는 의미이다. 바울은 주후 47년경 수리아에 있는 안디옥 교회에서 처음 선교사로 파송되었고(행 13:1-3) 주후 50년경에는 제2차 전도여행으로 마게도냐 지방으로 건너가 그 지방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파하였고(행 16:12). 그곳에서 3년 가까운 세월동안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가르쳤다(행 19:9-10). 바울이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바울과 함께 주고 받는 일에 참여한 교회는 빌립보교회뿐이었다. 여기서 '주고 받은 일'이란 바울 선교의 지원금과 구제금을 주고 받는 일을 가리킨다. 16절에는 빌립보교회는 이 때 뿐 아니라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바울을 경제적으로 두 차례나 지원한 적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빌립보교회에서의 물질적인 선물은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므로 바울은 이를 기뻐한 것이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바울은 자신에게 도움을 준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 자신이 기뻐하는 이유는 선물 때문이 아니라 그 선물이 빌립보교인들에게 주는 풍성한 열매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바울은 주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언급하고 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에게 보내는 선물은 물론 바울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지만 그 보다 선물을 주는 빌립보교회 성도들 자신이 더 큰 복을 받는다는 것을 깨쳐 주신 것이다.

18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그 선물은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낸 것이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한 것은 실제 바울 일행이 경제적으로 풍부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성어린 선물이 더 이상 바랄 수 없을 정도의 만족을 주었다는 의미이다. '그 선물'이란 헌금을 가리킨다. 연보는 원래 교회 행정에 필요한 경비 기타의 필요한 것을 충당하기 위해 또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돈이나 물건을 내는 것으로서 헌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원래 십일조는 11지파가 모아 기업이 없는 레위지파를 돕고 성전을 수리하거나 관리하기 위해 드려졌다. 바울이 헌금의 자세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였는데 이를 정리하면

 

매주 첫날에 각 사람의 수입에 따라 연보한다((고전 16:1,2).

기쁘게 연보한다(롬 15:26).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풍성한 연보를 한다(고후 8:2).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비방하지 못하게 조심한라(고후 8:20).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한다(고후 9:5)

너그럽고 후하게 연보한다(고후 9:11, 고후 9:13)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이 드린 선물을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칭찬하였다.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란 그 연보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제물'이란 뜻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제물을 드릴 때 이를 '향기로운 냄새'라고 표현하였다(레 1:9, 13, 17; 2:2, 9; 3:5, 16). 향기로운 제물이란 받으실만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물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연보 혹은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물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19-20.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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