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편지 한낮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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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3-01 00:00
산행에서 만난 분
 글쓴이 : 왕장미
조회 : 6,181  

산행에서 만난 분

7년 전, 위가 안 좋아 여기저기 병원을 다녀 봤지만 차도가 없자 어머니는 함께 산행을 하자 하
셨다.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다시 학교에 다니고 싶었던 나는 엄마를 따라나섰고, 오로지 건강
해져야겠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산을 오르내렸다. 그래서 혹 어머니가 운동을 오래 하시거나
나물을 캔다고 늑장을 부리시면 짜증을 내며 내려가자고 성화를 했다. 나무 이름, 꽃 이름 등
을 가르쳐 주셔도 들은 척 만 척 걸음만 재촉했다.

그런데 산에서 만난 한 분이 지금껏 잊히지 않는다. 60대 안팎으로 보이던 그분은 한쪽 팔과 다
리를 쓰지 못하는 중풍환자라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걸었다. 산행할 때마다 그분을 만나다 보
니 가끔 안 보이면 소식이 궁금했고, ‘혹시?’ 하며 괜한 걱정도 했다. 그즈음 다시 집에 우환
이 왔다. 아버지어머니의 잦은 입원과 사고로 장녀인 나는 병원, 법원을 들락거려야 했고, 난
음식 못 먹는 날이 늘더니 응급실로 실려 가는 일도 잦아졌다. 그 지경을 하고도 어쩔 수 없이
취직을 했는데, 어려운 회사 사정으로 월급도 못 받고 그만두고 말았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세상이 날 버린 듯 절망스러웠다.

다시 산을 찾은 건 팔다리가 붓고 마비가 오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그런데 거의 기다시피 오른
그곳은 전에 알던 곳이 아니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풀벌레들은 요란하게 날개를
비비며 제 힘을 자랑하고 있었다. 초록 나무며 풀들은 힘차게 위로 뻗으며 생명력을 과시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 아저씨 역시 볼 수 있었는데, 단 한 걸음 내딛는 일이 예전보
다 서너 배는 더 늦어진 듯했다.

한 달여 뒤 다시 산을 찾았을 때, 백발이 성성해 느릿느릿 지팡이를 짚고 올라오는 그분을 다
시 뵈었다. 너무 느려서 거의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벅차 올랐
다. ‘삶이란, 저렇게 느려지는 몸을 붙들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것이다. 고통에 좌
절하지 않고 그 모습을 인정하고 당당히 맞서는 거다.’ 할아버지가 마치 오랜 동지마냥 가깝
게 느껴지며 내려오는 발걸음에 힘이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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