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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편지 한낮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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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1-31 10:22
정충영 교수의 <갈라디아서 4장과 5장>
 글쓴이 : 남산편…
조회 : 3,778  



갈라디아서 공부
(4장과 5장)

 

제4장 아들로서의 자유를 누리다

1-11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다22

12-23 갈라디아 교회를 염려한다24

24-31 아브라함에게 하신 두 언약26

 

아들이라도 어릴 때는 종과 다름이 없이 일정한 때가 될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게 되듯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후견인이나 청지기의 역할을 담당하는 율법 아래 종노릇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찼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다. 그러므로 다시는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 거기에 종노릇할 필요가 없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자신을 존경하여 예수님을 대하듯 자신을 대하였던 때를 회고하면서 말씀을 떠나 율법을 지키려 하는지를 묻고 답하면서 옛날의 그 심령으로 돌아가기를 호소하며 두 언약을 비유한다. 우리 믿는 자들은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이다. 율법주의 유대교는 육체로 따라 태어난 아브라함의 자녀들에 불과하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난 아브라함의 영적 자녀들의 신앙공동체임을 밝힌다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다 1-11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유업을 잇기로 작정된 아들이라 하더라도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는 후견인과 청지기의 돌봄 아래에 있듯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유업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기 위한 것이지만 일정한 때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2절의 '후견인'은 보호자를 가리키고 '청지기'는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상속자라 하더라도 그의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종과 다름없이 유업을 받아 마음대로 다스리지 못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정한 때가 되면 그는 더 이상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을 필요가 없다. 3절에의 '우리가'라는 것은 그 바울 당시의 유대인을 가리킨다. 이들은 세상의 초등학문이라 할 수 있는 율법 아래 살면서 율법이 명하는 대로만 해야 했다. '초등학문'이란 미숙한 학문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이 단어는 헬라어 '스토이케온'에서 나온 것으로써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유한한 인간의 머리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성숙한 종교적인 입장에서는 유치한 것이란 뜻이다. 초등학문의 내용은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골 2: 21)이라 한 것과 같이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이 중심이 된다. 바울이 말하는 초등학문이란 바로 율법과 그 규례를 가리킨다. 토라(Torah)라 불리는 모세 5경을 분석하면 모두 613개의 조항이 있는데 그 중에는 '~하라'라는 긍정적인 조항이 248개, '~ 하지 말라'라는 부정적인 조항이 365개이다. 바울은 율법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을 초등학문 아래 종노릇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율법은 정한 때까지만 유효한 것이며 장성한 사람은 더 이상 율법의 종이 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유업을 이어 받을 수 있을 만큼 장성하였기 때문이다.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때가 차매' 란 것은 하나님께서 정한 때가 다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정한 때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때를 말하며 동시에 한시적인 율법의 역할이 끝나는 때를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셨음으로 이제는 누구나 그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는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고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여자에게서 나셨고 율법 아래에 나셨다. '여자에게서 나셨다'는 것은 인간으로 오셨다는 의미이다. 예수께서는 참 인간으로 오셨다. 어떤 사람들은 반신반인(半神半人), 즉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인 그러한 모습이나 본질을 띠고 난 것이 아닌가 하고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심으로 영혼과 육체를 지닌 채 탄생하셨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띄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었다(요1:14).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 아래에 나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야 하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셨다는 의미이다. 그는 율법에 따라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으셨다. 이것은 그가 언약의 백성이며 율법을 지켜 행할 의무를 가졌음을 말한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온전히 지켰고 율법의 의를 다 이루셨으며 율법을 온전하게 하셨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은 모두 율법 아래, 그리고 죄 아래 있었다. 이방인은 선택받지 못한 백성들이었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행한 모든 행위에 대해 형벌을 받아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다 지켜 행하심으로써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셨다. 그렇지 않았다면 율법아래 있는 사람들을 속량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온전히 행함으로써 우리에게 두 가지 큰일을 이루어주셨다. 그 하나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셨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명분을 얻게 하셨다. '아들의 명분'이란 아들로서의 온전한 권리( the full rights of sons)다는 뜻이며 '속량(贖良)한다'는 것은 대가를 치르고 우리를 건져내어 자유하게 하셨다는 뜻이다.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그 영이 우리 안에도 계시게 되었다. 우리가 그의 아들이란 증거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었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 할렐루야 ! 6절의 '아빠"는 헬라어의 '아바'로서 이 단어는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부를 때 '아빠'라 하는 것과 거의 같은 용도로 사용된다. 만일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롬 8:9).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 속에는 성령이 계신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가졌음으로 이제는 더 이상 종이 아니다. 참 아들이므로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있다. 8절에서 '그 때'란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율법에서 종노릇한 때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는 종의 신분에서 유업을 이을 아들의 신분으로 바꾸어졌다.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는 것은 당연하다. 아들을 몰라보는 부모가 없듯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된 우리를 아시고 우리 또한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초등학문인 율법의 종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할례를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를 향한 말씀이다.

10절에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킨다'는 것은 율법을 열심히 지켜나간다는 의미이다. 율법에는 기념해야 할 여러 가지 날이 있고 지켜야 할 달과 절기와 해가 있다. 날에는 안식일과 금식일, 달에는 월삭, 즉 매달 초하루, 절기로는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등이 있고 해에는 안식년, 회년 등이 있다. 이러한 것에 얽매여 복음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율법에서 자유로워지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핵심인데 일부 갈라디아 교인들이 율법주의로 돌아섰기 때문에 바울은 이를 한탄하며 자신이 애쓴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인가고 두려워하고 있다.

 

갈라디아 교회를 염려한다 12-23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2절에서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다'는 것은 바울이 이방인인 것처럼 율법을 버리고 살았다는 뜻이다.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갈라디아 성도들도 자신처럼 율법에 얽매이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가라고 간곡히 타이른다. 바울은 그들이 과거에 자신을 믿고 사랑하며 복음을 따르며 도와주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자신도 그들 못지않게 사랑하였는데 이제 그들이 바울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다른 길로 가고 있음을 안타가워하고 있다.

13절에서 '육체의 약함'이란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을 때가 육체에 병이 있음을 가리키는 것 같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란 구절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앓고 있는 질병은 그를 주의 사자로 인정하기에는 치명적인 것이 될 수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죄는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믿는 것이 일반적이었음으로 바울이 질병을 가졌다는 것은 주의 사자로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 교인들은 바울을 하나님의 사자처럼 대하였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 하셨는데(고후 12:8) 그 가시가 이 질병을 가리키는 것 같다. 바울은 그 질병 때문에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구하였지만 고침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인들은 그러한 질병을 가진 바울을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였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간질병일 것이라는 주장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 한다면 거품을 품으며 쓰러지는 자신의 모습이 교인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우며 고통스러울 것인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 교인들은 그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다는 것은 바울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게 컸지만 그 사랑이 지금은 어디가고 없느냐고 묻고 있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17.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15절의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란 구절은 무슨 뜻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이 구절은 앞에서 언급한 갈라디아 교인들이 가졌던 그러한 복 받을 만한 사랑이 지금은 어디 가고 없느냐는 뜻인 것 같다. '눈이라도 빼어' 주었을 것이란 표현은 그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의 그러한 태도 변화는 무엇 때문인지 나름대로 짐작해 본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이 율법주의자들의 것과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바울이 전한 것은 '참말', 즉 참된 복음이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은 율법, 특히 할례를 지키지 않으면 의롭게 될 수 없는데 이러한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은 결국 갈라디아 교인들을 바울과 이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사모할 만한 좋은 것에 대해 열심을 내는 것은 언제나 칭찬할만한 것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열심 내지 않고 율법주의를 위해 열심을 내고 있음을 지적한다. 열심을 내는 사람 중에는 인간 중심적이거나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여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잘 못된 것이며 오직 하나님 중심, 그리스도 중심, 진리 중심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19절에서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형제들아'라고 불렀지만(1:11; 3:15; 4:12, 28, 31; 5:11, 13; 6:1, 18) 19절에서는 그들을 향해 '나의 자녀들아' 하고 다정하게 부르고 있다. 바울은 어버이가 자녀를 대하는 심령으로 돌아가 그들을 타이른다. 어리석은 자녀들을 타이르는 다정한 부모의 심정을 느끼게 한다.

'그리스도의 형상'이란 성도들이 성숙하여 삶이 그리스도를 닮는 모습이란 뜻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성장하도록 온 힘을 다해 해산하는 고통을 참았지만 다른 복음으로 되돌아 간 그들을 위해 다시 해산의 고통이라도 당하겠다고 다짐한다. '해산의 수고'란 뜻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복음의 진리 위에 바로 세우고 그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갖게 하는 수고를 가리킨다.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언성을 높인다'는 것은 그들을 '책망한다'는 의미이다. 왜 바울이 그들을 찾아가 언성을 높이려 하였는가 ? 그 물음 속에는 복음을 떠나 율법주의로 갔다는 것과 자신이 가르친 복음을 바로 알지 못하느냐는 한탄이 들어 있다. 바울은 그들을 '형제'라 부르다 '자녀들아' 하고 불렀지만 이제는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하고 부르고 있다. 그들을 향한 걱정과 안타까움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바울은 답답한 심령으로 그들에게 율법의 의미를 다시 설명하며 그들의 잘못을 논리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는 것은 율법이 그들에게 말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저주 아래 있다는 것인데 너희들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느냐고 면서 그들을 책망하고 있다.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바울은 아브라함이 낳은 두 아들의 경우를 예로 들어 율법주의와 복음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두 아들은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과 사라에게서 난 이삭이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이었고, 하갈은 사라의 여종이었다. 두 아들 중 이삭은 사라에게서 난 약속의 자녀이었고 이스마엘은 여종 하갈에게서 난 육신의 자녀이었다. 이삭이 약속의 자녀란 한 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75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할 것이라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는 오랜 기간이 흘렀으나 자식을 보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아내 사라의 제안에 따라 여종 하갈을 취하여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다. 이 사실을 언급하면서 바울은 이삭은 약속의 자녀이지만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난 자녀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그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그를 의롭다 하셨다(창?). 75세에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100세가 될 때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은 이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이 완전하지 못했다.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은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태어났지만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지 않은 결과로 태어났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두 언약 24-31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사라와 하갈은 두 언약을 상징한다. 한 언약은 하갈이 낳은 아들 이스마엘과 그 어미인 하갈을 상징한다. 이 구절에서 '시내산'은 아라비아에 있는데 모세가 십계명과 율법을 이곳에서 받았다. 말하자면 시내산은 율법과 율법주의의 모태인 것이다. 율법은 예루살렘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하갈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에 메여 종노릇한다. 이것은 율법의 제도와 체계 아래 있었던 구약 교회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와 달리 다른 한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에 따라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받은 신약 교회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을 받은 영혼들은 교회에서 양육된다. 이 약속은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약속의 자손이다.

바울은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과 사라의 아들 이삭은 각각 오늘날의 유대교와 교회로 비유하고 있다. 율법주의인 유대교는 육체로 따라 태어난 자녀들에 불과하지만 기독교의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난 아브라함의 영적 자녀들의 신앙공동체이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참 자녀들이요 복음의 자유를 가진 자유자들이다.

 

27.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기록된 바'는 이사야 54:1의 인용이다. 본 절에서 '잉태하지 못한 자', '산고를 모르는 자', '홀로 사는 자'란 바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된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가리킨다. 율법을 준수하며 율법에 메여 있는 율법주의나 구약시대의 이스라엘백성과는 달리 육체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수많은 이방인들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약속의 자녀들이다. 이것은 마치 '잉태하지 못한 자',' 산고를 모르는 자',' 홀로 사는 자'가 남편 있는 자보다 많은 자녀를 낳은 것과 같다. 이삭은 약속의 자녀로 외아들이었지만 믿는 자들은 모두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손들이다.

그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아졌고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믿는 약속의 자손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0.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여기서 '육체를 따라 난 자'란 바로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을 가리키고 '성령을 따라 난 자'란 이삭을 가리킨다. 아브라함은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고 100세 때에 이삭을 낳았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14세가 더 많다. 먼저 난 이스마엘은 어린 이삭을 괴롭혔다(창 21:9). 바꾸어 말하면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약속의 자녀를 박해하였다. '이제도 그러하도다'란 말은 이제도 율법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인을 박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율법주의자들은 이스마엘의 후예이며 그리스도인은 약속의 자녀에 해당한다.

박해를 당하는 약속의 자녀를 하나님께서는 그냥 보고만 계시지 않으신다. 성경은 말한다. '여종과 그 아들을 내 쫓아라'. 약속의 자녀와 육체의 자녀는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종의 아들은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을 수 없다. 여기서 '유업'이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복된 언약을 말한다. 갈라디아 교회 안의 율법주의들은 여종 하갈의 자손에 속하지만 하나님의 복음을 믿는 자들은 약속의 자녀들로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자손이다. 바울은 우리 믿는 자들은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에 해당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표 ]는 두 언약을 비교하고 있다.

 

두 언약의 비교(4: 24-31)

구분

옛 언약 율법)

새 언약(복음)

비고

24절

하갈

사라

율법은 모세(종)에,

복음은 그리스도(아들)에 해당한다.

22절

계집 종

자유하는 여자

하갈이 사라에게 종속되듯

율법은 복음에 종속된다

28절

이스마엘

이삭

율법은종에 종속된 자를 낳고, 복음은 자유한 자를 낳는다

23절

약속의 자녀

율법은 언약의 본질인 복음을 섬긴다

25-26절

구속

자유

율법은 인간을 속박하나 복음은 자유하게 한다

29절

육체

성령

복음은 인간적 노력을 요구하나 복음은 성령으로 감동케 한다

30절

쫓겨남

유업상속

율법으로는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나 복음은 의롭게 한다.

 

제5장 자유자의 삶은 사랑이다

 

1-12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13-15 사랑으로 종노릇하라

16-23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게 되었음으로 다시는 율법으로 돌아가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자는 그리스도에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다. 우리는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가진 자들이며 예수 안에서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중요하다. 우리가 율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으므로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권유한다, 성령을 따라 행하면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1-12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1절은 율법의 지배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자유의 선언이다. 율법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은 모두 죄 아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온전할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의 정죄를 받아 멸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도록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우리를 율법에서 자유롭게 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거저 주는 자유이지만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죄의 대가를 지불하셨다. 우리가 죄에서 구속 받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으로 죄의 대가를 치루고 얻어낸 값진 선물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율법의 종으로 돌아가 종의 멍에를 지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현저히 욕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신다(요 8:32). 진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럼에도 율법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다시 종의 멍에를 매는 것이 된다. 종의 멍에를 맨다는 것은 율법추종자 혹은 율법주의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에게 종의 멍에를 단호히 벗어버리라 말한다. 바울은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에게 말한다. 할례를 주장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계를 갖지 않으려는 것이며 따라서 이것은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속죄와 구원을 거부하는 것이다.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할례는 옛 언약의 표이다. 그 옛 언약은 율법을 통해 맺어진 것이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율법은 '하나님의 모든 법들을 행하라'는 조건 하에서 '네가 살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라도 율법을 온전히 행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의롭게 하는 새 길을 열어주셨다. 그 길은 믿음을 통해서 가는 것이라 함을 우리는 앞에서 공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례를 받아 의롭게 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열어놓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을 버리고 율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이 구절에서 말하는 '의의 소망'이란 의롭게 되기를 소망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환란 속에서도 이 소망을 버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하시면서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그 후손 사이에 지킬 언약이다(창 17:9-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만이 중요하며 할례와 무할례는 아무 효력이 없다.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여기서 '달음질을 잘 한다'는 말은 갈라디아교인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바울은 신앙생활을 자주 달음질에 비유하였다(빌 3:12,빌 3:14, 딤후 4;7, 딤후 2:5). 잘 하던 달음질을 중지하게 된 것은 율법주의 때문이었다.

8절에서 권면(persuation)이란 알아듣도록 권하고 격려하여 힘쓰게 한다는 뜻이다. 바울은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그 권면'이라 부른 것이다. 8절의 '그 권면'이란 것은 율법주의의 주장으로써 그것은 진리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이것은 마치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부풀게 하는 것과 같다. 율법주의자들은 그 수가 지금은 얼마 되지 않지만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듯 갈라디아 교회를 어지럽힐 수 있음으로 바울은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0절에서 '다른 마음'이란 진리의 복음과 배치되는 생각, 즉 율법주의를 말한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에게서 받은 진리의 복음과 다른 가르침, 즉 율법주의자들의 가르침을 받아드리지 말 것을 다짐하고 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요동하게 하는 자들이며 이런 자들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명백하게 지적하고 있다.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바울이 전한 진리의 복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며 의롭게 되기 위해서 할례를 비롯한 율법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일체의 주장을 반대한다. 율법의 행위를 조건으로 하여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하는 것이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당한 수많은 박해들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교리 때문이었다. 만약 바울이 그러한 주장을 하지 않고 율법주의를 따랐다면 그는 박해를 면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율법주의자들의 환영과 칭찬과 보호 속에서 편히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바울이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그슬리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음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을 버리고 율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상관없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참된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박해 때문에 진리를 변질시키거나 타협하지 않는다.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여기서'어지럽게 하는 자들'이란 하나님의 참된 복음을 혼란케 함으로써 믿지 못하게 미혹하는 자, 즉 율법주의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율법을 지킨다고 스스로 자랑하고 다니면서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다. 바울은 좀 더 강한 어조로 그러한 사람들은 할례의 징표로 생식기의 끝부분을 약간 베어낼 것이 아니라 아예 다 베어버리는 것이 자랑하는 데는 더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구절을 」「우리 말 성경」에서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여러분을 선동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스스로를 거세해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으로 종노릇하라 13-15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에 대해 강력한 경계의 말을 한 후 이어서 율법에서 자유로워진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밝히고 있다. 먼저 자유에 대해 설명한다. 율법주의자들은 구약에 제시된 613개의 조항을 외우며 또 이를 지키기 위해 잠시라도 마음을 놓치 못한다. 모든 조항을 다 지키다가도 단 하나의 조항이라도 지키지 못한다면 범법한 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도저히 질 수 없는 무거운 짐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하셨다(마 11:28). 자유를 주시려 우리를 부르셨다는 말씀은 율법의 멍에에 매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향한 말씀으로서 우리를 그 멍에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겠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유를 누리게 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진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신다.

바울은 우리가 율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고 권고한다. '육체의 기회'란 육체의 욕망을 따를 기회란 뜻으로 율법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 기회가 많기 때문에 자신의 정욕을 채우려 하지 말고 서로 종노릇하도록 힘써야 한다. 종노릇한다는 것은 남을 섬긴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말씀하셨다(마 10:45). 남을 섬긴다는 것은 남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얻은 자유를 오용하거나 남용하지 않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와 관련된 말씀을 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라”(롬 6:12, 13).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율법은 613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두 계명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마 22:40).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는가를 보면 된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1요 4:20).

율법에서 말하는 하나님 사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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