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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1-31 10:28
정충영 교수의 <갈라디아서 6장>
 글쓴이 : 남산편…
조회 : 3,882  


정충영 교수의 <평신도를 위한 갈라디아서 공부> 6장 (개정)

6장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자랑하라

1-10 복음에 근거한 실제의 삶37

11-17 십자가의 자랑40

18 인사와 축도42

 

바울은 갈라디아서의 마지막 부분인 6장에서 율법에서 자유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범죄한 사람을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 잡고 자신을 살펴보아야 하며 서로 짐을 져야 하며 좋은 것은 가르치는 자와 함께 나누어야 하며 스스로 속이지 않아야 한다. 성령을 위해 심어 영생을 거두라.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라 때가 되면 이루게 된다. 믿음의 가정에게 더욱 더 착한 일을 하라는 등의 여러 실천적인 교훈들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할례를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을 경계해야 하며 믿는 것을 실천하라고 강조한다. 할례로 십자가로 인한 박해를 면하려 하거나 그것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할례나 무할례는 아무 것도 아니며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바울은 자신의 몸에 그리스도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면서 더 이상 할례와 같은 율법주의자들로 인해 괴롭힘을 받지 않도록 해달라고 주문한다. 마지막으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기를 기도한다.

 

복음에 근거한 실제의 삶 1-10

 

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여기서 '범죄한'이란 단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파랍토마'로서 이것은 고의적 범죄가 아닌 실수로 인한 과오를 가리키고 있다. '범죄한 일'이란 앞 장에서 언급한 '육체의 일'(갈 5:18-21)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육체의 소욕을 따르면 범죄하게 된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와 대립된다. '신령한 너희들'이란 성령을 좇아 행하는 너희들이란 말이다. 바울은 육에 속한 사람들, 즉 범죄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를 설명한다. 먼저, 자신을 살펴 그러한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둘째로 그들을 정죄할 것이 아니라 온유한 심령으로 그들을 대하여야 하고, 셋째로 그들이 잘못을 바로 잡도록 기도와 간구로 도와주고 필요한 경우에는 징계하여야 한다. 그들을 못 본채 하고 외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하라고 말하였다(딤후 2:25). 여기서 온유한 마음으로 징계하라는 말에 주의해야 한다. 자신이 심판주인 것처럼 교만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할 것이 아니라 온유하고 겸손한 심령으로 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심판자인 것처럼 그들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우리도 그들과 같은 범죄한 자리에 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한 분만이 심판자이시며 우리 또한 심판자 앞에 서야할 연약한 존재이다. 거역한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시어 진리를 알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딤후 2:25).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2절에서는 다른 사람의 '짐을 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1절에서 언급한 '남의 짐'이란 범죄한 사람을 위해 지는 짐이다. 성도들은 다른 사람의 짐을 외면하지 않아야 하고 그것을 자신이 범죄한 것처럼 괴로워하며 그들이 회개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스께서는 자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도 그리스도의 속죄에 동참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잘못하지 않도록 돌아보아야 하고 다른 사람이 시험에 빠질 때 그들의 잘못이 자신의 것인 것처럼 애타는 심정으로 그들을 권고하고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는 의미이다. 남의 짐을 지지 않고 자기는 스스로 선한 채 하며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행세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이 져야할 짐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짐을 남에게 지우지 않아야 한다.

2절의 '그리스도의 법'이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우리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사랑에까지 자라가야 한다.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모든 사람은 실수가 많고 또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자신이 올바르게 행하고 있는지 언제나 살펴야 한다. 남과 비교하여 자신이 남보다 낫다는 교만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다 연약한 존재이며 부족한 사람에 지나지 않으므로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흉보며 비난하던 죄를 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은 죄에서 면역된 자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자신을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며 다른 사람 앞에서 자랑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자기의 일을 살피라'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 바른가를 점검하라는 의미이다. 스스로 살펴서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지 않았으면 비록 다른 사람이 비난이나 욕을 하며 반대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자부심을 갖고 계속해 나가는 것이 좋다. 5절에서는 '자기의 짐'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2절에서는 '짐을 서로 지라'고 말하고 있음으로 모순된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짐은 같이 나눌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2절에서 말하는 짐은 혼자 지기에 과중한 것이고 5절의 짐은 혼자 질 수 있는 짐이다. 2절에서는 범죄한 자에 대한 짐이지만 5절에는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것이다. 자신을 살펴 부족함을 알고 그 부족함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각자는 자신이 저야 할 짐을 질뿐 아니라 동시에 남을 배려하며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여기서는 '가르치는 자'는 교역자이며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교인들이다. 일반적으로 일반교인들은 물질적인 것을 얻기 위해 밤낮 없이 노력하지만 교역자들은 영적인 것을 얻기 위해 그리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금식하며 성경을 연구하여 교인들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교인들은 교역자들에게 넉넉한 의식주를 공급하여 물질적인 결핍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바울은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고전 9:11)고 말함으로써 이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바울은 자비량으로 전도하였기 때문에 교인들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 않았지만 교인들에게 그들의 교역자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구약의 십일조 제도는 성전 봉사자들인 레위 인들에게 물질적인 지원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레위지파와 제사장들은 성전 봉사의 일만 하였음으로 돈을 벌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11지파에 속한 백성들이 드린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려지고 이것은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바울도 이러한 맥락에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좋은 것을 함께 나누라 한 것이다. 영적인 것은 육적인 것보다 더 큰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좋은 것을 함께 나누더라도 결코 손해가 되지 않는다. 가르치는 자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가르쳐야 하며 배우지 않고 아는 채 해서는 안 된다. 배우는 자는 겸손하게 배워야 한다. 많은 것을 아는 채 자랑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가르치는 자를 업신여기는 것이 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팔거나 이익의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율법주의자들은 자신을 남에게 과시하고 남으로부터 칭송을 듣기 위해 할례를 주장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바울은 스스로 속이지 않아야 한다면서 두 가지 문제를 제시하였다. 그 하나는 하나님은 결코 업신여김을 받을 분이 아니시라는 것, 다른 하나는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업신여김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조롱을 받지 않는다', 혹은 '속임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혹은 하나님이 보시지 않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두 말을 하는 것도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 되며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된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된다'는 것이 불변의 법칙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콩과 팥이 외관상으로는 같아 보여도 그 열매는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심어야 할지 주의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거나 성령을 위하여 심거나 둘 중하나이다. 육체를 위해 심는다면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두게 되고 성령을 위해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 자기 육체를 위해 심는 다는 것은 육신의 일, 세상의 일, 혹은 죄악 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일 자체가 육신적이거나 영적인 것으로 아니란 점이다. 예컨대, 직장에서 하는 일은 세상의 일이며 교회에서 하는 일은 성령의 일이다 하는 식의 이분법적인 구분은 비성경적이다.

우리는 직장에서 세상일을 통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부끄러운 것은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우리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릴 수 있고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롬 6:13).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 가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을 위해 심어 영생을 거두어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육체를 위해 심어 사망을 열매로 거둘 수 있다.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반복하면 지치게 된다. 선을 위해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알아주기는커녕 오히려 비난을 받거나 조롱을 당하면 낙심하여 주저 앉기 쉽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낙심하여 중단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의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간다면 거둘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잠간 살다가 본향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 우리가 남에게 선을 행할 기회 또한 그렇게 많지 않다. 남에게 줄 수 있는 것 또한 지극히 제한적이다. 오늘 베푸는 선이 나의 마지막 선일 수 있다. 바울은 특히 믿음의 가정들에게 착한 일을 행하라고 권한다. 그들은 주 안에서 우리의 형제자매이며 함께 천국에서 다시 만나 영원히 함께 살아갈 분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초대교회에서는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행 2:44). 이러한 자세는 우리가 따라야할 모범이 된다.

 

십자가의 자랑 11-17

 

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바울서신들의 대부분은 바울 자신이 직접 손으로 쓰지 않고 구술하였다. 예컨대 로마서 서신은 더디오가 대필하였다(롬16:22). 그러나 이 구절에서 '내 손으로' '큰 글씨로' 썼다고 한 것으로 보아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큰 글씨로 친히 쓴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왜 큰 글씨로 썼는지 알 수 없다. 어떤 이들은 바울이 안질이 있었거나 시력이 나빴기 때문에 큰 글씨로 썼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왜 바울 자신이 직접 썼는지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한다. 바울이 직접 큰 글씨로 썼다는 것은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마음이 긴박하고 또 그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갈급하였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원래 할례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나타내는 표이기 때문에 그것은 율법을 지키겠다는 서약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아무도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에 할례파도 실상은 율법을 지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받은 할례를 자랑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한다는 것은 외적인 자신의 외적 모습을 과시함을 가리킨다. 이들 할례 파들은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는 일방 유대인으로부터의 비난을 면하려는 속셈이 있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당하는 박해를 피하는 하나의 방책이기도 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할례를 받는 사람은 율법을 지킬 의무를 가지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와는 무관계하게 된다.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바울은 인간적으로 많은 것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 (빌 3:5-6)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모든 것을 해로 여기며 자랑거리가 될 만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한다(빌 3:8). 그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이라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빌 3:7-8).

진정으로 자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십자가를 통해 세상은 그에게 죽고 그는 세상에 대해 죽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할례를 받는 것이나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은 할례의 문제를 초월한 새로 지음을 받은 존재들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5:17).

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여기서 '규례'란 '규칙이나 원리'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규례를 행하는 자'란'이 규칙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규례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란 믿음으로 새로 지음을 받은 자, 곧 성도를 가리키는데 이는 곧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다. 새로운 피조물은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와 무관하며 이스라엘인인가 이방인인가가 문제되지 않는다. 바울은 이 규례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과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평강과 긍휼이 임하기를 기도하면서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간청한다. 바울은 자신이 당한 수많은 고통에 더하여 할례문제로 더 큰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은근히 밝히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받은 '흔적'이 있다고 말한다. 원래 '흔적'이란 헬라어로 '스티그마'인데 이것은 불로 찍힌 흔적 혹은 낙인을 가리킨다. 소나 말에 표시한 이러한 흔적은 그 짐승의 소유주가 누구인지를 밝히는데 사용된다. 바울이 이 구절에서 말하는 흔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그것은 바울에게는 그리스도를 위해 당한 육체적 고통의 흔적이며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확인해 주는 자랑스러운 흔적이라 할 것이다. 바울처럼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가?

 

인사와 축도 18

 

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갈라디아 교인들의 심령에 있을지어다"라며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축복의 말씀과 기도를 드린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베푼 그 수많은 크고 적은 은혜를 입으면서도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한 채 살아간 갈라디아 교인들 뿐 d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 은혜가 우리들 심령에 넘치기를 기도하며 서신을 끝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 또한 '그리스도의 은혜가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과 저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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