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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18 09:57
정충영교수의<갈라디아서 서론과 1장>
 글쓴이 : 남산편…
조회 : 3,954  

갈라디아서 강해   


목차

갈라디아서 서론 7

제1장 다른 복음은 없다10

문안과 찬양 1-5 10

다른 복음은 없다 6-10 11

바울이 전한 복음의 근거 11-24 12

제 2장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14

할례자의 사도와 이방인의 사도 1-10 14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하다 11-14 17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15-21 18

제 3장 율법으로 부터 자유하라20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다 1-5 21

아브라함의 이신득의 6-9 22

저주는 율법으로부터 온다 10-14 23

율법과 언약 15-22 24

하나님의 아들 23-29 26

제4장 아들로서의 자유를 누리다28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다 1-11 29

갈라디아 교회를 염려한다 12-2330

아브라함에게 하신 두 언약 24-31 33

제5장 자유자의 삶은 사랑이다34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1-12 35

사랑으로 종노릇하라 13-15 37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 16-24 38

제 6장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자랑하라43

복음에 근거한 실제의 삶 1-10 44

십자가의 자랑 11-17 47

인사와 축도 18 48

갈라디아서 서 론

 

1. 갈라디아서의 배경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바울의 3차 전도여행(A.D.53-A.D.58) 중인 A.D. 56년경에 기록한 서신이다.

바울이 3차례에 걸친 전도여행에서 빠짐없이 들린 곳이 갈라디아 지방이었다. 바울이 돌에 맞아 순교할 뻔 했던 루스드라가 갈라디아 지방이기 때문에 바울에게는 갈라디아란 잊을 수 없는 지역이며 따라서 갈라디아에 있는 여러 교회는 그에게 애정이 깊은 곳이었다.

 

흔히 갈라디아서를‘소 로마서’로 부른다. 두 서신이 유사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비교하면 로마서가 침착하고 논리적인데 반하여 갈라디아서는 전투적이다. 특히 갈라디아서가 다루고 있는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은 종교개혁 당시 천주교가 주장하는 것과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바탕으로 종교개혁을 일으켰고 또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갈라디아 교회에 개종한 유대인들이 들어와 바울이 전한 복음을 잘 못 된 것으로 비판하며 할례를 행하지 않고는 의롭게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위해 쏟은 노력들을 허사로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 서신을 통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들이 율법주의자들을 용납한 어리석음을 나무라고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이 잘못 된 것임을 일일이 지적하면서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강력하게 설파하고 있다.

 

2. 갈라디아서의 내용

갈라디아서에 등장하는 율법주의자들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들은 구약의 많은 의식을 행하고 율법을 지켜야만 의롭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부정하고 할례와 같은 율법의식을 행하지 않으면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교인들에게 할례를 비롯한 율법의식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바울은 두 가지 일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하나는 자신이 전한 복음의 정당성을 변호하는 것으로써 다른 복음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공인된 사도권이 있음을 명확히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중심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율법의 저주 아래 있지 않고 율법에서 자유하게 되었으며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자세히 설명한다.

 

바울은 또 그의 사도권이 공인된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개종하게 된 경위, 예루살렘의 사도들과의 합의하에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의 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자신들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역할을 분담하게 된 경위들을 자세히 설명한다.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음을 선포한다. 그리고는 그 자유를 방종의 기회로 삼지 말고 서로 섬겨야 함을 강조하며 성령 안에서의 자유를 설명하면서 우리에게는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있음을 지적하고 열매와 육체의 일을 대조하면서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는 '이신득의' 사상과 관련된 율법관, 바울의 윤리관을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3. 갈라디아서의 주제

 

갈라디아서의 중심주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以信得義)는 것으로서 이 주제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에 해당한다. 의신득의는 필연적으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동반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의 중심주제는 의신득의이며 부차적인 주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는 기독교 자유의 대장정(Magna Charta)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자유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와 함께 종교개혁의 근거를 제공하였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갈라디아서를 '나의 편지요 나의 어머니다'라고 고백하였다.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선교여행을 하고 있을 때 유대교에서 개종한 율법주의자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할례나 율법에 따른 관습을 강요하였다. 그들은 할례와 같은 유대교의 관습을 따르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복음의 진리를 부정하고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기도 했다. 바울은 이러한 주장들의 잘못을 반박하면서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권을 갖고 있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바로 잡고 자신이 전한 복음이 정당함을 입증하였다.

갈라디아서는 오늘날과 같이 잘못된 교리를 주장하는 거짓 목자와 이단 파들,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복음인양 가장하여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처럼 이끌어가는 율법주의적 사고가 판치고 있는 이 세대에 가장 명쾌한 해법을 제공하고 있는 책이라 할 것이다.

 

4. 갈라디아서의 특징

갈라디아서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 있는 거짓 교사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뚜렷한 의식을 갖고 작성되었기 때문에 전투적이며 공격적인 필체로 강력하게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둘째는 자전적인 내용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바울의 주장이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 것임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자신의 체험이나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논리적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기독교의 교리는 인간의 논리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하더라도 비논리적인 것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기독교의 핵심적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로마서도 논리적이지만 그 논리를 차분하게 전개하는데 반해 갈라디아서는 로마서 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5. 갈라디아서의 구성

 

본서에서는 갈라디아서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부분(1:1-4:31)은 기독교의 중심원리가 되는 의신득의에 관한 교훈을 강조하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이를 변호하고 증거하고 있다. 둘째 부분(5:1-6:18)은 이신득의를 삶에 실천하고 적용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갈라디아서의 중심 요절은 5장 1절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는 구절로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더 이상 율법에 메여 있지 않도록 자유를 주셨다는 것이다.

 

본서에서는 설명의 편의를 위해 갈라디아서의 6개의 장을 중심으로 각 장의 내용을 몇 개의 단락으로 구분하고 각 단락의 재목 밑에 그 줄거리를 간단히 서술함으로써 갈라디아서의 내용파악을 쉬게 파악하도록 할 것이다.

 

 

 

제1장 다른 복음은 없다

 

1-5 문안인사와 찬양

6-10 다름 복음은 없다

11-24 바울이 전한 복음의 근거

 

바울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음을 분명히 밝히면서 갈라디아에 있는 여러 교회들에게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임하기를 기원한다. 바울은 문안 인사가 끝나기가 바쁘게 다른 복음은 없다고 선언한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떠나 율법주의로 빠져들고 있음을 걱정하면서 다른 복음은 없으며 다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는 것일 뿐이라 단정한다. 그리고는 그가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은 것이며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도가 되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고 간증한다.

문안인사와 찬양 1-5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이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갈라디아 교인들 중에는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원래 사도란 '보내심을 받은 사람'을 의미하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예수님의 선택을 받아 복음을 전한 열 두 명의 제자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 선택을 받아 그와 함께 있으면서 그의 모든 말씀을 듣고 그가 행하신 일들을 목격하고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받은 사람을 가리킨다(고후 12:12).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의 전권대사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며 믿음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 예수께서는 친히 열 두 제자들을 택하여 '사도'라고 칭하셨다(눅 6:13). 성경에는 이 열 두 제자 외에 그리스도의 사도라 불리는 사람이 몇 명 더 있다. 가롯 유다를 대신하여 선택된 맛디아(행 1:26), 바나바(행 14:26), 바울(롬 1:1), 예수의 형제 야고보(갈 1:19), 그리고 안드로니고 및 유니아(롬 16:7) 등이다.

바울이 갈라디아교인들에게 이 서신을 보낸 것은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율법주의자들의 잘못된 주장과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자들의 잘못을 바로잡고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자신의 가르치는 복음이 참된 것임과 자신에게 사도권이 있음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1절에서 그는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부터 사도의 직분을 받았음을 확실히 밝히고 있다.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2절에서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라고 한 것으로 보아 갈라디아 지방에는 여러 교회들이 세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란 바울이 비밀리에 이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 갈라디아 교회들을 위해 여러 형제들이 함께 기도하며 걱정하며 갈라디아서를 쓴 것임을 보여준다. 바울은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하고 있다.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며 우리에게도 허락하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선물이다.

바울은 문안인사에서 그리스도를 세 가지 측면에서 증언하고 있다. 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분. ②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져 주신 분, ③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몸을 내어 주신 분. 이러하신 예수그리스도께 우리도 영원무궁토록 영광을 돌려야 한다.

다른 복음은 없다 6-10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안부의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본론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만큼 바울의 마음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대해 긴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바울서신들은 문안에 이어 그들을 위해 기도하거나 칭찬하거나 감사를 드린 후에 본론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이 서신에서는 문안이 끝나자 바로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해 '내가 너희를 이상하게 여긴다'면서 강한 어조로 그들을 질책한다. 그 까닭은 그들이 진정한 복음을 버리고 '다른 복음'을 받아드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복음'이란 바울이 전한 복음과 다른 것으로서 율법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잘못된 교리를 말한다.

7절에서 바울은 다른 복음은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이 전하는 다른 복음은 율법, 특히 할례를 받지 않으면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 '다른 복음'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기는 것으로서 진리와 다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른 복음'이란 없으며 단지 교인들을 교란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그들이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믿음이기도 하다. 이 단순한 교리를 무시하고 선을 행해야 구원을 얻는다든가 율법이 말하는 제사를 드리거나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복음과 다른 복음인 것이다. 바울은 8절에 이어 9절에서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거듭 경고하고 있다.

9절에서 '너희가 받은 것'이란 그들이 이미 받은 복음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예부터 믿어오던 복음이다.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복음의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전한 복음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 내려오던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원래 복음 신앙은 새 것이 아니다. 누구라도 새로운 복음이라며 전한다면 그것은 다른 복음일 가능성이 많으므로 경계하여야 한다.

지난 2000년 동안의 교회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다른 복음이 다양한 형태로 전파되었고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였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이단사설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이것은 이미 예언된 것으로서 놀랄 일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수록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 자신을 그리스도라 주장할 것이라 말씀하셨다(마 24장을 읽어 보라). 다른 복음을 증거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과 그리스도의 구원을 왜곡하는 것이므로 심판과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도적으로 변질시키고 가감하는 것은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죄악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이 구절은 하나님의 종들이 가져야 할 바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종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아첨하거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인지, 하나님께 좋게 하거나 하나님에게 기쁨을 구하는 것인지 살펴야 한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한다면 그는 참된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오늘날의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설교들 중에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거나 사람들의 인기를 얻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음은 실로 통탄할 일이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근거 11-24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알게 된 것이라 말한다.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들은 명상과 깨달음, 혹은 양심이나 이성, 혹은 감정에 의존한 것이며 스스로의 도덕적 판단으로 만들어진 것일 뿐 유일하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은 것으로서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을 통하여 받은 것이다. 계시란 헬라어로 '아포칼립시스'인데 이것은 감추어 있거나 덮혀 있는 것을 직접 열어 보이거나 알려준다는 뜻으로서 인간 스스로 알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친히 들어내시거나 알리시는 것이다(마 16:17, 롬 16:25). 바울은 자신이 계시로 받은 복음을 전하였고 그 복음은 유일하며 절대적인 것이다.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바울은 개인적인 간증을 통해 자신이 받은 그 복음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의 간증은 자신이 유대교에 속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를 핍박하였다는 고백으로 시작된다. 바울은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은 율법주의자로서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고 멸하고자 애썼다. 14절의 '연갑자'란 비슷한 나이를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그는 유대주의에 깊이 빠져 있었고 조상들이 물려준 전통에 열심이었다. 교회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을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 때 증인들이 벗어놓은 옷을 지킬 만큼 성실하였고(행 7:58) 스데반의 순교 후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진멸하려고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는 일에 앞장 섰다(행 8:3. 행 9:2).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바울은 자기가 교회를 향해 범한 갖가지 박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하고 부르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에게 전하기 위해 자신에게 나타나셨음을 간증한다. 바울은 남녀를 막론하고 예수그리스도의 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다. 그가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 갑자기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는 음성을 듣게 되었다. 그는 '주여 뉘시오니이까?' 라고 반문하였다. 그 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는 음성을 듣게 되었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기' 때문이라고(엡 1:4)고 말한다.

그 후의 자신의 행로를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입게 된 바울은 다른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랐다. 그는 자신보다 먼저 사도 된 사람들 예컨대, 베드로, 요한, 그리고 기둥같이 여겨지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 등을 만나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다.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바울은 선배들을 만나 자신의 진로를 상의하거나 그가 교회에 행한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비는 것이 옳았다고 생각되지만 바울은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예루살렘이 아니라 아라비아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다. 바울이 왜 예루살렘 대신 사막지대인 아라비아로 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신학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인간적인 관계를 정립하려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그 때까지 율법주의자로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가 경험한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인적이 드문 아라비아로 가서 거기서 그때 까지 가졌던 것과 전혀 다른 새로운 관점으로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가장 먼저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추측하건데 그는 아라비아에서 많은 계시를 받았을 것이다.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마섹으로 다시 간 것은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사건들을 다시 회상하며 다짐하는 기회를 가지려한 했던 것으로 보인다.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18절으 '그 후 삼년'이란 다메색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지 3년을 가리키며 게바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를 말한다. 그는 3년 후에 예루살렘으로 갔다. 거기서 그는 베드로를 만나려 했지만 15일을 지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다만 주의 형제인 야고보만 만났을 뿐 다른 아무런 사도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가 왜 다른 사도들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바울은 야고보를 만나 그가 받은 계시와 그의 직분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나누었을 것으로 보인다. 갈라디아서 2:9에서 바울은 야고보를 기둥 같은 인물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야고보가 초대교회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절에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 거짓이 아니로다'고 한 것은 그가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 야고보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그가 전하는 복음이 사도들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바울은 예루살렘 방문 후 북쪽에 위치한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갔다. 길리기아는 바울의 출생지인 다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울은 그의 고향에서 복음을 전하려 했을 것이다. 22절에 '유대의 교회들이'라고 한 것을 보아 그 지역에도 교회가 세워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지역들의 교인들은 바울에 대한 소문만 들었을 뿐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물론 그 소문이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며 교회를 멸하려 했던 사람이 예수를 믿고 전도자가 되어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바울이 그곳에 도착하자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의 간증을 듣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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